지금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종이비행기 국가대표를 아시나요? 종이비행기 국가대표로 세계대회에 출전했다고 말하면, 친구들조차도 못 믿겠다며 '너 세계 정복하냐?'라고 되묻곤 하죠. 저는 한국 대표로 세계종이비행기대회 '레드불 페이퍼 윙스 2015'에 출전했어요. 3년 마다 한 번씩 열리는 세계대회는 80개국에서 200여 명의 선수들이 참여하는 세계적인 대회예요. 아직도 믿기지 않으시죠? 그런데 종이비행기는 그냥 쉽게 접어서 날리는 간단한 스포츠가 아니에요. 저는 오래 날리기 종목에 출전했는데, 1초의 시간을 늘리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지 모르실겁니다. 종이비행기를 날리기 위해 항공역학, 유체역학, 공기역학을 공부해요. 종이비행기의 주름 하나와 종이 결에 따라 양력과 저항력, 롤링 등이 달라지거든요. 이제 제 이야기가 조금씩 실감 나실 거예요.

종이비행기는 어렸을 적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었어요. 저는 경북 상주의 시골마을에서 자랐어요. 인터넷이나 케이블 TV가 들어오지 않는 깡시골 이었죠. 가정환경이 넉넉지 않다 보니, 장난감이 많이 없었어요.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리고 돌을 줏어서 물수제비를 하는 게 장난감이었죠. 그렇게 유년시절을 보내다 중학교 때 우연히 TV에서 기네스북 특집 방송을 보게 됐어요. 거기서 미국 공군 엔지니어 '켄 블랙번'씨가 소개됐어요. 제가 늘 가지고 놀던 종이비행기를 항공 전문가가 직접 만들고 27초를 날려서 기네스북에 오르는 장면이 무척 놀라웠습니다. 저도 해보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때부터 종이비행기를 날리기 시작했죠. 그런데 생각보다 무척 어려웠어요. 일반인들이 종이비행기를 날리면 3초에서 5초 이내에 떨어져요. 종이비행기에 철사를 끼우기도 하고, 테이프를 붙여보기도 하고 색다르게 접어보기도 했는데,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었어요. 그래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종이비행기가 날아가는 원리부터 공기의 흐름과 비행기의 저항력까지, 관련 논문을 찾아서 읽어봤어요. 조금씩 고쳐나가며 비행시간이 늘어나는 걸 느껴보니 그 쾌감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짜릿하더군요. 1년에 1초 꼴로 비행시간을 늘려갔어요. 15초 이상 날리면 세계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는 실력이 되는데, 저는 지금 평균 18초를 날려요. 저의 최고기록은 23초, 세계에서 공식적으로 20초 이상 날리는 사람이 5명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저랍니다.

종이비행기기가 밥 먹여 주냐구요? 그런 질문 많이 받아요. 처음에는 취미였지만, 지금은 제 인생과 생각을 완전히 바꿔놨습니다. 종이비행기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나 관심은 무척 작을 지 몰라요.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연구하고 노력해서 성취감을 얻고, 그것이 내 정체성이 됐다면 충분히 값진 일을 했다고 생각해요. 제 꿈이 스포츠 마케팅을 하는 겁니다. 제가 종이비행기를 좋아하듯, 사람들이 즐기고 좋아하는 스포츠를 이벤트나 축제로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놀 수 있는 장을 만들어주고, 기업들에게는 적극적인 홍보 기회로 제공하는 것이 제가 하고 싶은 일이예요. 그래서 첫걸음으로 친구들과 이벤트 기획 회사를 창업했습니다.

얼마 전 오스트리아에서 열렸던 세계종이비행기대회에서 제가 어렸을 적 TV 기네스북 프로그램에서 봤던 '켄 블랙번'씨를 만났어요. 제가 꿈에 그리던 영웅을 만난 거죠. 설렘을 안고 인사를 건넨 후 내 이야기를 해줬어요. 그랬더니 그가 '어린 시절 힘든 환경 속에서 열심히 살아줘서 고맙다'며 '난 종이비행기에 관심 없는 사람에게는 별 것 아닌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주 먼 곳에서 너처럼 한 아이가 나를 우연히 보고 꿈을 키우며 무언가에 도전하는 힘을 얻었다면 그것만으로도 난 무척 행복하다'고 말해줬어요. 그의 한마디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큰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아요.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챔피언이 되면, 또 다른 누군가가 자신감이나 꿈을 꾸게 되지 않을까요? 제가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이유입니다."

이정욱 (28.종이비행기 국가대표 및 스포츠마케팅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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