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감마카피. 개그맨 정재형, 개그콘서트 '우주라이크'로 시청자 가까이 다가갈 때 쯤 코너가 끝나고 다시 멀어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천천히 다시 달려갈 거예요. 너무 자극적이지 않고 모두가 함께 웃을 수 있는 개그를 하는 게 제 꿈입니다.

KBS 개그맨 공채 시험때 우주인 연기를 했어요. 마침 영화 '그래비티'가 흥행한 뒤였죠. 바로 탈락되는 응시생도 많은 상황인데, 얘가 시작부터 너무 천천히 들어오니까 빵 터졌죠. 2년간 KBS, SBS 등 4번의 개그맨 시험을 봤는데 항상 무표정한 심사위원들이라 웃는 경우는 드물거든요. '아 됐다' 싶었죠. 물론 그 상황이 웃겼던건 다른 요인들도 많았을 거예요. 도우미로 섭외한 친구가 급하니 시험장에 빨리 들어오라고 한껏 분위기를 고조 시켜놨기 때문이기도 하고, 심사위원들은 보통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노트북 영상으로 응시자의 연기를 관찰하니까 제 슬로우 모션이 뭔가 싶었겠죠. 노트북 너머로 시선이 올라 오더라고요. 이렇게 하나의 웃음 포인트를 위해서 많은 계산과 설계가 필요하죠. 아이디어 내고 공연 짜는 게 쉽지 않은데 좋아서 '조금 더! 조금 더!' 하니까 되더라고요.

동국대 컴퓨터공학과를 다니고 있었어요. 군대갔다가 복학하고 열심히 공부했는데 학점이 3.6. 맘 잡고 공부한 복학생의 점수 치고는 형편 없었죠. 프로그래머가 프로그램도 잘 못 짜고.. 취업은 해야하니 토익학원을 다녔는데 3일 지나니까 도저히 못 하겠더라고요. 억지로 하긴 하는데, 공부를 하는건지 공부하는 연기를 하는건지. 도무지 안 되겠다 싶었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살면서 뭘 하고 싶었는지 써보자. 그렇게 국회의원, 대통령, 과학자, 프로그래머, 마술사, 개그맨 등을 썼어요. 그리곤 소거법으로 지워 나갔죠. 대통령은 안 되겠고... 개그맨이 남았습니다. 그렇게 부모님 몰래 개그 연기 학원에 나가기 시작했어요. 토요일마다 열리는 일반인 체험 프로그램에 참가했는데 개그를 짜는 동안은 힘들어도 회의든 연습이든 웃음을 기다리는 그 과정이 너무 즐거웠죠. 아무런 기초도 없이 짠 무대에 개그맨 지망생들과 선생님의 반응이 좋았고 실제 무대에 올려보자는 말에 개그맨을 제대로 준비해 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대학로에서 열리는 무료 개그 무대에 일반인 자격으로 2개의 공연을 올렸고, 제가 설계한 플롯에서 기대했던 부분에 '빵' 관객들의 웃음이 터졌던 순간, 그 희열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날 첫 공연 투표에서 1등을 하고 무대 인사를 하는데 어머니 모습이 보이더군요. 개그 공연을 해 보게 됐다고 어머니께 넌지시 문자로 약도를 보내드렸었는데 오셨을 줄은 몰랐어요. 츤데레인 어머니께서 자기는 잘 모르겠고, 같이 온 친구가 정말 재밌다고 하더라 돌려 말씀하시는데 기분이 좋았죠.

개그맨이 되겠다는 꿈을 이루고 어쩌다보니 입사시험때 연기했던 우주인 역으로 우주라이크에서 많은 사랑을 받아서 행복합니다. 연예대상 신인상 후보에도 올랐는데, 시상식에 참석하면서 왜 매 회 순간 순간 더 열심히 하지 못했나 반성도 했어요. 순간 번뜩이는 재치보다는 노력으로 개그를 하는 스타일이라 더욱 그래요. 맨땅에 헤딩이라고 할까요. 새로운걸 찾기 위해서 안 해본 시도들을 계속 해 보는 거죠. 서태훈 선배는 저를 4층지박령이라고 불러요. 뭔가 생각이 날때까지 연구동 4층에 남아 연기를 해보고 또 해보고 하거든요. 어떻게 보면 저는 얼굴이 아주 웃긴것도 아니고, 엄청난 연기력이나 남다른 개인기가 있는 것도 아니예요. 하지만 인상적이지 않은 인상도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같은 이미지가 박혀 있지 않고, 새로운 아이디어로 다양한 캐릭터들을 입고 벗을 수 있으니까요. 특별한 재주보다는 말의 재치와 속도감으로 웃기는 개그를 하고 싶은 제 목표에도 맞고요. 예를 들면 박영진 선배의 민상토론, 박대박. 궤변인데 정곡을 찌르는?

개그콘서트가 아무래도 공영방송이다보니 개그 소재도 제한적이고 전 연령 모든 성향의 대중을 웃겨야 하는 부담이 있어요. 요즘은 또 SNS의 재밌는 영상과 트렌드가 쉴 새 없이 쏟아지니 사람들이 TV시청을 많이 하지 않고 어디선가 본 비슷한 것도 보기 싫어하죠. 그래도 선후배 동료들이 새롭고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개그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지켜봐 주세요.

개그맨 정재형(29)
www.facebook.com/hell773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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