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
아내가 망칠(望七)의 나이가 되니 주부(主婦) 의 일상적 역할이자 의무(?)인 밥짓고 반찬 장만 하는 일과 설겆이 하기가 지겹고 힘든 모양이다. 하기야 창의성을 발휘할 구석 이라고는 별로 없는 단순 반복적인 노동을 40년 가까이 해왔으니 질릴 때도 되었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이 발동하여 설겆이는 진즉에 인수하여 가사(家事)의 일익(一翼)을 담당한다는 자부심으로 삼았으나 문제는 '밥'이었다.

국이 없으면 한 숟가락의 밥도 먹지 못하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나의 '토종 식성'도 위기를 맞았다. 밥과 기본적인 반찬도 겨우 마련해 놓는 판에 '국물'을 주문했다가는 '식탁의 평화'는 그야말로 국물도 없이 박살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2.
흔히 '궁하면 통한다(窮則通)' 고 하지만 이 말은 궁함에서 통함으로 가는 과정을 잘라 먹었다.

주역(周易) 계사하전(繫辭下傳)에 나오는 정확한 말은 "역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한다. 이로써 하늘이 도와 길하며 이롭지 않음이 없다[易, 窮則變, 變則通, 通則久, 是以自天祐之, 吉无不利]."이다.

궁하면 일단 변해야 하는 것이다. 궁한 처지에 이르게 된 원인을 발본색원하여 과감하게 제거하거나 개선해야 겨우 통하게 되는 것이다. 고통이 따랐지만 '토종식성'을 개선하기로 했다. 더불어 '요리'에도 관심을 가지고 유튜브 등을 통하여 나름대로 공부를 하고 실습 했다. 콩나물국이나 북어국, 된장찌개, 김치찌개 정도는 마음만 먹으면 쉽게 만들 수 있는 수준에 이르면서 위기의 식탁은 평화를 유지했다.

실로 하늘이 도와 이롭지 않음이 없게 된 것이다.

3.
K-breakfast라 이름 붙인 일요일 아침의 소박하나 거룩한 한 끼.

마늘,마늘쫑, 대파, 게맛살을 넣은 스크램블 에그(Scrambled Eggs), 오렌지 쥬스 한잔(간혹 막걸리 한잔이나, 맥주 한 켄, 우유 한잔, 녹차 한잔 등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 완숙 토마토 한 개, 요거트 1개, 입가심으로 단무지 세 쪽,

에그 스크램블을 만들 때는 첨가하는 우유의 양과 불 조절이 중요하다. 계란 하나에, 우유 한 큰 술이 적당, 마늘 대파 등을 볶아 기름을 낸 후 미리 풀어 우유와 게맛살과 잘 섞어 둔 계란을 팬에 두른 뒤 나무 주걱으로 가장자리부터 으깨며 팬 중앙으로 모은다. 계란에 물기가 없어지고 몽실몽실 부풀어 오르면 불을 끄고 잔열(殘熱)로 익히면 타지 않는다.

스크램블 에그(Scrambled Eggs)는  프라이팬에 버터나 식용유를 두르고 계란을 깨어 익는대로 휘저으면서 볶는 간편식이다. 우유, 소금, 후추 및 기타 조미료도 가미한다. 익힌 정도에 따라 Loose, Moist, Well Done.으로 나눈다.

베이컨이나 대패 삼겹을 바삭하게 구워 곁들이면 완벽한 아메리카 스타일의 아침이 되지만 육류를 별로 즐기지 않는데다 난세의 끼니로는 너무 사치스러운 것 같아 생략한다.

4.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 번, 끼니는 때와 같은 것이라 산 자에게 어김없이 찾아온다. 살아있음을 확인이라도 하듯 에우든, 굶든, 사정 없이 찾아오고, 건너뛰든, 이어지든 속절 없이 들이닥친다. 그러므로 인간의 삶은 끼니를 이을 수 있는 시간의 연속에 불과하다. 이승의 마지막 밥 숟가락을 놓는 순간부터 죽음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蛇足: 측은지심은 인지단 (測隱之心 仁之端)이라, 눈치 빠른 독자께서는 이미 간파했겠지만 이 글의 주제는 음식이나 식욕이 아니라 사랑이다. 인간은 뱃속을 위해서가 아니라 영혼을 위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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