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비몽사몽하다 눈을 떠니 멀리 산이 눈에 들어왔다.
얼핏얼핏 백설을 봉우리에 인 도봉산 아닌가.
그러면 여기는 어디쯤인가. 운전하는 아내가 외곽순환도로라고 한다.
그 도로를 내가 알 턱이 없다. 내 물음은 단지 도봉산이 보임으로써
이제 서울에 들어온 어느 지점을 확인하고자 했을 뿐이다.
그러면 조금 전 지나온 그 긴 터널은 사패산 터널일 것이다.
그 터널을 지날 때 퍼뜩 눈이 떠 졌다. 타임머신을 타고 뭔가 광속의 기운에
빨려들어가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터널을 빠져 나오니 펼쳐져 있는 게 도봉산이었다.
흐린 날 늦은 오후의 도봉산 풍경이 참 좋다.
선인봉 쪽은 구름에 가려 꼭대기 미끈한 바위 부분만 아득하게 보인다.
이제 서울이구나. 참 먼길을 달려 왔다.
멀리 남도의 끄트머리에서 출발해 얼마를 왔는지는, 운전하는 아내가 잘 알 것이다.
나는 곁에서 그냥 졸기만 했을 뿐이다.
아내가 피곤한 어투로 투덜거린다. 집에 가면 할 일이 있는데, 있는데...
아내는 김장을 해야 한다고 했다. 오늘 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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