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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충무로로 나가게 되면 반드시 들리는 맛집이 있다. 칼국수 집이다. 1980년대 초부터 다녔으니 30년이 훨씬 지났다. 이 집의 별미는 물론 칼국수다. 양은 냄비에 담겨져 나오는데, 얼큰한 국물이 일품이다. 국물이 얼큰한 것은 나름대로의 비법이 있겠지만, 마늘이 적당하게 많이 들어가서라고들 한다. 예전부터 이 집에는 손님들에게 권하는 말이 있었다. "국물을 남기지 말고 다 드시라는 것." 이 말에는 국물이 맛도 있지만, 좋은 마늘이 많이 들어가 있어 몸에도 좋다는 뜻이 들어있다.
충무로 옛 시절에는 참 많이 들락거렸다. 이 집에는 칼국수 말고 닭백숙도 있다. 술 안주로 좋다. 점심에는 칼국수를 먹고, 저녁에는 닭백숙을 안주로 소주를 마셨다. 그 시절 같이 다닌 친구와 후배가 그립다. 성악과를 나온 임진규 후배는 미국간 후 소식이 없다. 한국의 기둥이라며, 자기 이름 한주(韓柱)를 자랑하던 김한주 후배. 그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친구 진이는 이 세상에 없다.
어제는 비가 내렸다. 충무로에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 내리고 우중충하고 바람부는 날, 뜨끈한 칼국수만 한 게 있을까. 아주머니가 반갑게 대해준다. 아주머니도 많이 늙었다. 주방에 있던, 항상 웃음을 머금고 있던 앳된 색시도 이제는 중년끼가 들어보인다. 칼국수 뽑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 않고 주인 아저씨가 항상 맡았다. 그 아저씨도 이젠 백발이 성성한 노인의 모습이다.
예전에는 칼국수 메뉴가 두가지였다. 그냥 칼국수와 계란 넣은 칼국수. 지금은 세가지다. 곱배기가 추가됐다. 그래봐야 값은 2백원 차이일 뿐이다. 나는 언제나 계란 넣은 칼국수를 먹었다. 남들은 어떨런지는 모르겠으나, 계란을 넣어야 국물 맛이 더 고소하고 맛나다는 나름대로의 믿음이 있었다. 보기에도 좋다. 보기에 좋은 것이 맛도 좋다. 빨간 고추가루, 검은 김, 파란 파에 노란 계란 알이 어우러진 비주얼은 식욕을 돋우게 한다.
뜨거운 국물 한 숫가락에 속이 풀리는 느낌이다. 잘 뽑혀진 국수가락을 젓가락으로 먹기에 좀 답답하다. 그래서 양은 냄비가 좀 식을라치면 아예 냄비채로 국물과 국수가락을 들이마신다. 그래야 양이 찬다.
반찬은 김치 딱 한가지다. 이곳의 겉저리 김치도 예전부터 소문났다. 갓 버무린 겉절이 김치가 더 맛있다. 그래서 갓 버무린 게 있으면 항상 추가로 주문을 한다. 아주머니는 결코 거절할 줄 모르는 사람 같다.
이 집에 오는 손님들은 물론 충무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예전부터 다니는 단골들이 많다. 대개들 70을 전후한 노년들이다. 어떤 아주머니가 한 분 오셨다. 주인아주머니가 반색을 한다. 오랜만에 온 모양이다. 닭곰탕을 시킨 모양인데, 음식이 나오자 혼자서 아주 맛나게 먹는다. 이 집 음식이 그동안 먹고 싶었던 모양이다. 노인 몇 분이 들어왔다. 매양 않는 자리가 있는 모양이다. 그 자리에 앉자마자 닭백숙과 소주를 시킨다. 주인아주머니는 이 분들 자리에 한참을 앉아 얘기를 주고받았다.
이 분들 소주 마시는 모습을 보니 갑자기 소주 생각이 났다. 벌건 대낮에 혼자 소주를 마시는 나를 생각하니 좀 우습다. 마실까 말까로 한참을 궁리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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