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겨울에 내리는 눈은 보기 싫은 것들을 안보이게 하거나, 검은 것을 흰 것으로 바꿔주는 힘이 있기에 사진기를 가까이 하는 요즈음은 더욱 눈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러한 나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지난 목요일 주변이 보이지 않을 만큼 많은 눈이 내리기에 서울의 중심인 종로의 세운상가로 향한다.

옥상에 올라서니 서울이 감추고 싶은 뒷골목의 민낯들이 모두 보인다. 거대한 빌딩들 사이에 초라하게 들어선 나지막한 집들, 페인트가 벗겨져 불쌍해 보이는 건물들과 함석으로 만들어진 지붕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하얀 눈이, 고층빌딩들과 대비되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내가 서울에 올라온 1973년과 비교하여도 세운상가 주변의 모습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기에 측은해 보이기도 하였지만, 이곳에 오면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 시간이 정지한 것 같아, 나 역시 나이를 먹지 않고, 철부지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위안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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