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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원의 꽃시계

2018년 6월 14일

대한민국 성우회에서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현충원 참배가 있던 날, 나는 동해로 여행 중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서울 현충원을 혼자 참배하고 왔다.

광장 입구에 꽃시계가 시간을 알려주고 있었다.
시간은 과연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걸까?
시간과 공간을 시공간 연속체라 하고, 카이로스( Kairos)시간과 크로노스( Chronos)시간은 그 측정법이 완전히 다르다.
시간은 개인의 감정에 따라 그 길이가 크게 차이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기분이 좋은 때는 몇시간이 순식간으로 느껴진다.
슬프거나 고된 시간은 일각(一刻)이 삼추(三秋)와 같다.
그런 감정의 시간이 카이로스 시간이다.

꽃다운 청춘을 나라에 바치신 전사자 가족들이 느끼는 카이로스 시간은 얼마나 길게 느껴졌을까?
현충원 꽃시계는 그런 의미를 담고있었다.

현충지(顯忠池)에는 수련이 곱게 피어났다.
납골당으로 올라가는 길목의 월남참전 전사자 묘역에는 참전 전우회 현수막이 드리워진 가운데, 눈에 초점이 흐린 한 무리 老兵들이 그늘에 쉬고 있었다.
카메라를 맡기고 채명신 사령관님께 거수경례로 인사드리는 내 모습을 담았다.

그리고 제 12 묘역에 잠들고 계신 해군사관학교 제 3기생 이윤희 교수님 묘소에 엎드렸다.
해군 대학 정규과정에서 군사전략을 담당하셨다.
선배님께서는 남루한 의복에다 앞창이 떨어진 구두를 신어시고 너덜너덜 누더기가 된 강의 노-트 한권을 신주단지 다루듯이 끼고 다니셨다.
학계에서 해군 전략에 入門한 학자들이 전무한 상태에서 일본에서 나온 책들을 손수 번역하셔서 자신의 해어진 노-트에 수록하시고는 수년 동안을 같은 교재로 강의하셨기 때문에 학생장교들 간에 빈축을 사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선배님께서는 개의치 않으시고, 세계적인 군사 전략가들과 그들이 저술한 책들을 소개해 주셨다.
Alfred Mahan의 Sea Power에서부터 Karl von Clausewitz의 戰爭論에 이르기 까지, 그리고 고대로 부터의 戰史를 그 짧은 시간에 學生將校들에게 열심히 가르쳐 주셨다.
Liddel Hart의 “Indirect Approach", Schlieffen 장군의 속전속결전등은 지금도 기억에 잊히지 않는 강의 내용이다.

고개를 들었더니 素服한 여인이 납골당 위치를 묻는다.
사연 많은 군인가족일 것이다.
그녀를 안내하여 납골당으로 향했다.
박한익 선배님께서는 320호 맨 위층에 모셔져있었다.
묵념을 올리고 보니 주위에 모셔진 분들 대부분이 면식이 있었다.

장군 제 3묘역, 홍영현 사령관 내외분께 문안 인사를 올렸다.
월남전쟁터에서 귀국하신 후, 제 2해경사 사령관으로 재직하시면서 전쟁터로 격려의 편지를 보내 주신 정이 많으신 분이셨다.

“권제독! 세상이 많이 변했다지?”
내가 설명을 드렸다.
“광화문에서 뒤를 보니 방귀소리 요란한데, 향기로운 그 냄새가 온 장안을 덮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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