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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에서 굽어 본 세월


해발 287m, 야트막한 산머리를 딛고 서니
툭 트인 시야로 사방이 한 눈에 들어온다.

멀리
윤곽이 풀어진 산들이
어깨를 겯고 달리고

산을 넘은 큰 강이
굽이굽이
들을 적시고
세월을 실어 나른다.


감제(瞰制)(*)가 탁월한
이 야산(野山)을 두고
삼국(三國)은 각축했고

영욕(榮辱)의 세월 속에
무수한 삶과 죽음이 교차했다.

남진(南進)하던 고구려의 온달이
신라와 싸우다 죽었고
백제의 개로왕은
고구려 군에 잡혀 목이 잘렸다.


남아있는 보루(堡壘)마다
말 울음소리,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

지키려는 자와 뺏으려는 자의 비명과 함성
무심한 바람결에 귀를 때리며 흩어진다.


기억 저 너머로
풍화(風化)된 시간이 흘러

다시

이 격전(激戰)의 땅에

흐린 하늘을 찌르는
견고한 욕망의 첨탑(尖塔)을 세우고

사람들이 모여 산다.


살아 있는 것들이
모두 그러하듯이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운명은
확률처럼 확실한 데

안개 속 희미한 희망을 다투며
바쁜 걸음을 옮긴다.


(*) 감제(瞰制) :주변과 상대적으로 높은 지점에서 관측하거나, 사격에 의해 적의 활동을 방해할 수 있는 능력 또는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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