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해지는 남애항을 보고 펜션으로 돌아오는 길 불켜진 허름한 슈퍼 유리문 안에 할머니께서 뭔가 열심히 작업을 하고 계셨다. 멈춰서 가만히 들여다보니 모래 좌판 위에 작은 낚싯바늘에 뭔가를 꿰어넣어 쌓고 계셨다. 너무 신기해서 한참을 들여다보아도 할머니는 일에 열중을 하셔서 눈치를 채지 못하셨다.

드르륵~~~ 문을 열고 너무 공손하게..ㅎㅎ
"할머니 뭐하시는 거예요? 지나가다 보았는데 제가 사진을 좀 찍어도 될까요? 얼굴은 안 찍을게요."
"괜찮아요. 얼굴이 뭐 대수라고... 참가자미 낚싯밥 꿰는 거요."

이렇게 할머니와 만나 아예 가게 마루 끄트머리에 주저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그냥, 용돈이라도 버는 거지. 참가자미 낚싯밥 꿰는 거요. 한 판에 삼만 오천 원 받아. 예전엔 하루에 두 판도 너끈히 했는데 요즘엔 한 판도 힘들어. 넝감이 거 뭐야 사십년 전에 천만 원 보증을 서지만 않았어도 내가 지금 이 고생을 안 하지. 사십년 전 천만 원이면 얼마나 큰돈인지 알지? 뼈골 빠지게 갚았다오. 애들 공부 다 시켜가며...'

중간 중간 오래된 미닫이문이 열리며 오백 원짜리 60촉 전구도 사 가고 그 전구를 바꾸러도 오고, 앞집 아줌마가 개 주라고 코다리 삶은 것도 갖다 주시고... 난 할머니가 번거롭게 일어나시지 않게 심부름을 해드렸다.

할머니는 내가 생각했던 겉모습보다 아주 유식하셨다. 잘못하다가는 내 얕은 인생 경력이 뽀롱이 날 것만 같을 정도로... 애들이 저녁 식사 시간에 기다릴 것 같아 뭐를 하나 사드리고 가야할까 가게 안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너무 구질구질하고 살 물건이 없었다.

"저 박카스 하나 먹을게요."
"나랑 이야기 했다고? 사진 찍었다고? 그럴 필요 없어요. 이런 게 재미지..."
박카스 한 병을 마시고 다시 할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
가게 문에 붉게 익은 꽈리가 매달려 있었다.
"저거 꽈리네요"
"꽈리도 알아? 몇 살인데 저걸 알아? 젊은이 아니요?"
나를 젊은이로 봐주시다니... 안경너머 힐끗 쳐다보시며 "도시서 살아야해..."
꽈리를 불던 시절부터 할머니와 이야기를 하면 아마 밤을 새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너무 편하고 담담히 역어내시는 한 생을 살아오신 이야기들은, 할머니의 마음속에서 볶이고 삶고 구워져서 진국이 되어 나온 진곰탕 같았다. 같은 이야기를 다른 이에게 들을 수는 없을테지. 할머니의 이야기에 빠져들며 갑자기 난 내 이야기도 좀 하고 싶어졌다.

'저 내일 아침에 해 뜨러 나오는 것 보러 나올 때 다시 또 올게요."
"내일? 내일은 나 없어. 결혼식 가야 해."
아! 내 인생에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가 버렸다.

누군가 가게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왔다. 이웃집 할아버지가 생뚱맞은 눈으로 날 바라보셨다.
궁둥이를 일으키는데 왜 그리 마루에서 안 떨어지든지..

다음날 아침 할머니의 가게엔 작은 자물쇠가 아래위로 채워져 있었다.
할머니 다음에 제가 또 올게요. 저 펜션에 안 가고 할머니 만나러 올 용의도 있어요.
건강하시고요~~~~

천만 원, 지금으로 치면 억대겠지만 다 잘 잊으셨어요.
그 돈으로 잠실 시영 아파트를 사셨으면 지금 이십억이겠어요.ㅠㅠ

가자미 낚싯줄을 한 판 바다에 던지고 기다리면 참가자미들이 줄줄이 엮여서 나오듯,
할머니께도 제게도 새로운 일들이 팔딱팔딱 활기차게 나타나길 기다릴게요.
제 삶에 낚싯줄에 낚싯밥을 잘 꿰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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