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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면서 일본 아닌것 같은 오키나와
이곳은 일본땅이면서도 일본 본토인 가고시마 까지의 거리가 580킬로미터나
되지만 대만과는 불과 100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는, 일본속의
동남아 같은 곳이다.

한 마디로 복잡한 역사를 갖고 있는 오키나와, 류큐제도의 여러 섬 중에서
가장 큰 오키나와는 태평양 전쟁때 가장 큰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며
현 일본내의 미군시설의 70%가 이 곳에 있다.

류큐왕국때는 중국에 조공을 바치며 왕의 책봉에 간섭을 받기도 했으며
종전후는 미국의 지배도 받아서 그런지 일본이면서 일본아닌듯, 어쩌면
한국인듯, 또는 중국인듯, 미국인듯한 문화가 뒤섞여 있다.

류큐왕국의 본성이었던 슈리(首里)성은 2차 대전시 파괴되었다가 오키나와
일본 복귀 20주년 기념으로 1992년에 복원, 2000년 12월 일본에서 11번째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성이다.

이 슈리성의 창건은 14세기 무렵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자세한것은 알수 없고
1405년 쇼 핫시가 류큐왕국을 지배하여 거성한 이래, 1879년 최후의 국왕
쇼 타이가 메이지 정부에 내어줄 때 까지 약 500년에 걸쳐 류큐의 정치,
외교, 문화의 중심으로서의 역할을 해 왔다.

이 슈리성은 중국과 일본의 축성문화를 융합한 독특한 형식으로 비록 근래에
복원된 성이지만 옛 석벽의 일부가 남아 있기 때문에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사진 1에서 보듯 슈리성으로 들어가는 슈레이문은 붉은칠이 어쩌면 자금성을
닮은듯 하기도 하고 우리의 경복궁을 닮은듯도 하다.
사진 4는 일본 본토보다 더 화려한 오키나와의 전통 옷이며 5,6은 옛 류큐왕국의
신하 복장이다. 모자의 색깔로 지위의 높고 낮음을 구별했다고 하는데 보라색과
빨간 모자중 누가 더 높은지는 잊어 버렸네. ㅎㅎ

사진9는 해시계, 사진 11의 종은 슈리성 정전에 걸려 있었던 종이나 이것은
복제품이다. 사진 16은 왕이 사용했던 의자이며 사진 19의 유리속에 있는것이
옛 석벽의 돌들이라고 한다.

오키나와 여행시 나는 이 슈리성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
왜 류큐의 마지막 왕은 메이지 정부에다 나라를 바쳤을까?
물론 사츠마(현 가고시마)번주가 사탕수수를 탐내어 침범해 와서 정복 당했다고는
하지만 여행객의 한 사람인 내게도 많은 의문을 던져 준 곳이다.

부귀도 영화도 구름인듯 간곳 없지만 연중내내 관광객들로 미어터지는
슈리성은 분명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여행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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