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황금연휴를 맞아 고향 집에 모인 가족.
콧바람을 쐬자며 갯내음 상큼한 바닷가로 향했다.

해안 바위 위에 깔끔하게 조성된 조망 데크에 기대어
금가루 반짝이는 남녘바다의 정취에 흠뻑 빠져들었고...

곁에서 조용히 바다를 내려다보던 여동생. 느닷없이 상기된 목소리로
그 호적한 정적을 깼다. "와~! 저기 숭어다~!"

그 가르키는 손가락을 따라가보니, 늘상 보아왔던 숭어와는 생김새도 다르고
크기마저 엄청난 고기 한마리와 그 옆에 딱 달라붙은 작은 고기 3마리가
수초들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누가봐도 어미와 새끼들이 함께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아니... 저게 숭어라고? 저렇게 통통하고 커다란 숭어가 어딨어?"
"오빠는~?! 저게 바로 참숭어야~! 시장에 가면 저렇게 큰거 많이 나오거든요?!"

수면에 나풀거리는 커다란 해초사이에서 등지느러미와 꼬리 정도만
간간히 드러낼 뿐 좀체 전신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았기에
그들이 수초밖으로 나오는 그 감질나는 순간을 즐기고 있었고...

그런데... 어느 순간, 근처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던 낚시꾼이
우리 일행의 웅성거림을 따라, 이른바 훌치기낚시라고 알려진 갈고리형태의
날카로운 미닐이 사방으로 달린 낚시를 들고 그곳에 나타났다.
...저 놈 한마리만 잡으면 오늘 대박치는 날이라나...
...아니... 어미가 새끼들하고 노니는데... 그냥 눈으로 감상만하면 안되나...
...하기야... 저걸 던진다고 설마 숭어가 걸려들기나 할까...

느닷없는 훌치기낚시의 등장으로 유쾌하게 들썩이던 데크의 분위기는
졸지에 참으로 묘한 긴장감에 휩싸여버렸다.

팽팽한 긴장감이 흘러, 낚싯대를 드리우던 사람마저
집중력이 떨어지고 힘겨워질 정도의 시간이 흐르던 그 순간...
그 참숭어 어미가 해초밖으로 큰 몸집을 드러내며 유유히
그 갈고리낚시 쪽으로 다가서는게 아닌가!

그와 동시에 낚시꾼의 손끝에 잔뜩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고,
이윽고 그 어미숭어가 갈고리낚시 미늘 위까지 접근해버린 상황...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낚시꾼은 날렵하게 낚싯대를 훌쳐댔다!
그런데... 참으로 용케도 날카로운 미늘이 어미숭어를 간발의 차로 비켜나갔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느닷없는 봉변을 피한 숭어가족이
황급히 해초아래로 몸을 피해 사라지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아슬아슬하게 절호의 기회를 놓친 낚싯꾼은 그 아쉬움에 연신 입맛을
다셔대더니, 다시 해초 앞에 낚싯줄을 드리우며 결전의 의지를 새롭게 다졌고...

한번 봉변을 당했기에 숭어가족이 다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테고
그렇다면 이미 상황은 그렇게 종료된 것에 다름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한참이 흐른 뒤...
결코 다시는 모습을 드러내질 않을 것으로 생각했던
그 숭어가족이 다시 그 낚시가 드리워진 쪽으로 다가서는 것 아닌가!!!

...아니.... 왜 또 나타나는 거야... 거기가 어디라고...

그렇게 다시금 숭어가 다가서자 낚싯꾼은 데크에 한발짝 더 바짝 기대서며
온 신경을 손끝에 집중했고...

첫번째 상황과 똑같은 숭어와 낚시와의 위치.

여지없이 낚시줄이 창공으로 튕겨올랐고...
수면 위에 하얀 포말이 일더니, 일순간 허여멀건한 뱃살이 수면위로 솟아올랐다!

"잡았다~!!!"

낚싯꾼이 내지르는 단말마의 탄성이 바닷가에 울려 퍼졌고...

눈깜빡이는 순간에 일어난 전혀 예상치도 못한 상황.
낚싯대가 부러질 듯 활처럼 구부러지면서 그 팽팽한 낚싯줄의 끝에는
어미숭어 입아래 턱부분이 제대로 걸려있었다.

60cm는 족히 넘어보이는 그 숭어의 눈은 잔뜩 겁에 질려 있었고...

낚싯대로는 도저히 들어올릴 수없는 엄청난 무게인지라
그 낚싯꾼은 상기된 목소리로 낚싯대를 데크 난간을 따라 끌고 간 다음
함께 나선 동료에게 낚싯대를 붙들게 하고는
자신은 데크아래 갯바위로 황급히 뛰어내렸다.

그런데... 그런데...
그 어미숭어가 절망의 눈망울로 낚싯줄에 끌려가는 그 와중에
그 어미 곁에는 3마리의 새끼가 어쩔줄을 모르고
결사적으로 따라붙고 있는 것이 아닌가!!!

퍼득거리는 어미와 그 곁에서 어미를 애타게 부르는 듯한...
... '엄마! 엄마! 엄마!!! 갑자기 왜그래~엄마!!!' ...

목전에서 이런 안타까운 광경이 펼쳐질 줄이야...
갯바위에 내려선 낚싯꾼이 숭어 턱에 걸린 낚시를 꺼내고
숭어를 끌어 올리려는 바로 그 망연자실의 순간!!!
참으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겁에 질린 채, 모든 것 포기하고 절망으로 힘없이 늘어져 있던
그 어미숭어가 갑자기 힘차게 퍼더덕거리더니
그 낚싯꾼의 손아귀에서 미끌어지듯 튀어올랐고... 그대로 첨벙~!!!
하얀 포말을 남기고 순식간에 바닷속으로 줄행랑을 쳤다!!!

데크위에서 숨 죽인채 얼굴 잔뜩 찡그리며 이 순간을 지켜보던
가족들 중 몇몇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소리죽인 작은 물개박수까지 쳐댔고...

바로 코앞에서 손아귀에 거마쥔 대박을 놓쳐버린 그 낚싯꾼.
숭어가 사라진 바닷속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며
허탈한 씩씩거림을 연신 토해냈고...

... ... ...

따지고보면, 차이는 딱 두가지라는 생각.

하나는... 똑같은 숭어인데,
새끼딸린 숭어냐, 새끼없이 쏘다니던 숭어냐.

만일 새끼없이 쏘다니다 걸려든 숭어였다면, 대물을 놓친 그 낚싯꾼의 아쉬움에
지켜보던 모두가 장탄식으로 격하게 동조했을터...

새끼가 딸린 어미라는 것과
어미가 낚시바늘에 걸려 끌려가는 와중에서도
그 어미를 애타게 부르며 어쩔줄 모르고 어미 곁에 달라붙는 상황이다보니
구사일생의 극적인 상황에 안도의 한숨을 쉬지 않았을까.

또 하나는... 똑같은 사람인데,
눈에 쌍심지를 켠 낚싯꾼이냐, 바람쐬러 나온 방관자적 시선이냐.

바닷속에 있는 모든 고기는 다 잡아올리리란 부푼 꿈으로 나섰건만
웬종일 고기 한마리는 커녕, 연신 바닷속만 훑어 올리던 낚싯꾼의 눈에
새끼까지 몽땅 잡아도 부족할 판에 대물로 다가서는 숭어라니...

... ... ...

결국, 관조의 시선에 따라 고무줄처럼 뒤바뀌는 참으로 편리하고 이율배반적인 잣대.
그런데, 어쩌랴... 그것이 바로 삶인 것을...

< 전남 여수시 백야도 등대 해안가에서 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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