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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대한 갈증이 많다. 두 가지다. 하나는 하드웨어적인 것. 말하자면 사진을 찍는 카메라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말 그대로 포토그래피(photography), 즉 사진찍기에 대한 것인데, 이 두 가지의 공통점은 빈티지(vantage), 즉 오래된 것이라는 점이다. 카메라는 많이 만졌다. 근 이십여년을 만졌으니, 웬간한 건 내 손을 거쳐갔다. 흔히들 라이카(Leica)를 35mm 카메라의 보석(gem)으로 친다.
1925년 라이카 카메라가 만들어지고 1928년 상업적으로 첫 출시된 이래 라이카는 카메라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로망이었다. 라이카에서는 오래 전부터 라이카 카메라의 역사를 한 눈에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하는 '라이카 스탐바움(Leica Stammbaum)'이라는, 포스터 형식의 화보를 발간해 왔다. 역대로 출시된 라이카 카메라로부터 시작해 매년 나온 라이카 제품을 도표화한, 말하자면 라이카의 '패밀리 트리(Leica Family Tree)다. 내가 지금 갖고있는 스탄바움에는 1978년까지의 제품이 나와있다. 여기에 나와있는 카메라들 중 초기의 얼마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을 만져봤다. 물론 그 후에 나온, 예컨대 M6라든가 R6.2 등도 만져봤다.
이렇듯 라이카 카메라의 대부분이 내 손을 거쳐갔으니 카메라에 대한 욕심은 접을 때도 지났을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은 게 문제다. 빈티지 카메라들 가운데 라이카 말고도 좋은 카메라들이 많다. 라이카를 어느 정도 거치니 그런 카메라들이 아직도 내 눈에 서성거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카메라들도 대부분 만져봤다. 딱 하나, 못 만져본 게 있다. '제카플렉스(Zecaflex)'라는 이안 폴딩(Twin-Lens Folding) 카메라다. 몇 차례 구할 기회가 있었으나 여의치 못했다. 얼마 전 이베이(eBay)에 하나가 나왔는데, 몇 날을 지켜보다 포기했다. 상태가 좋지 않은데 비해 판매자가 가격을 너무 올려 잡아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유찰됐는데, 못내 아쉬워 판매자와 연락을 취해보기도 했다.
현재 갖고있는 카메라들 가운데 제일 아끼는 것은 짜이스 이콘(Zeiss Ikon)에서 만든 '콘타플렉스 이안 리플렉스(Contaflex Twin-Lens Reflex)'로,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콘타플렉스 TLR'로 부르는 카메라다. 근수로 따져 세근이나 나가는 묵직한 무게에 걸맞게 중후한 느낌을 주는 옛 사진기다. 이 카메라는 35mm 카메라로 두 개의 렌즈가 장착된 첫 카메라로서의 역사성을 갖고있다. 게다가 전기방식에 의한 노출계(Light Meter)가 첫 부착됐다는, 1935년 첫 출시 당시의 최첨단 카메라 기술이 구사됐다는 평가를 지니고 있다. 이 카메라를 처음으로 손에 넣은 게 1999년이다. 아마 국내에서는 내가 처음으로 가졌을 것이다. 그 때 주변에서 한번 보여달라는 요청이 폭주했었고. 충무로와 을지로의 카메라상들로부터 팔아라는 주문도 많이 받았다. 나는 제반 사정상 수집가의 경지까지는 결코 못 된다. 들락날락한다는 얘기다.
지금 갖고있는 콘타플렉스 TLR은 5년 전에 구한 것이다. 그냥 집에다 두고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이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에도 물론 사진 찍기에 대한 갈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앙드레 브레송이 라이카로 찍은 옛 흑백사진들에 매료된 것은 진즉부터다. 그래서 언젠가 나도 오래 된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보겠다는 생각을 해 왔다. 하지만 생각 뿐이었다. 그렇다고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벨티니(Weltini) 폴딩 카메라로도 찍어보고, 라이카의 니켈 엘마 렌즈로도 사진을 찍어 보았다. 결과물은 내가 생각하고 기대한 만큼에 훨씬 못 미쳤다. 마음만 앞 섰을 뿐, 기술이 없었기 때문일 것인데, 이게 흑백사진에 대한 갈증을 더 부추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다른 것은 그렇다치고 우선 이 콘타플렉스 TLR로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
80년이 넘은 카메라라 사진이 올바르게 나올지 모르겠다. 충무로 '충일'의 정지학 사장에게서 점검과 CLA(Clean, Lubrication, Adjustment)를 받은 지도 꽤 오래 된다. 그저께 점검해보니 잘 작동한다. 슬라이딩 커턴 상태도 좋고, 셔터도 매 스피드에서 잘 떨어진다. 노출계는 믿을 수 없으니, 감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조나(Sonnar) 렌즈는 좀 헤이지(hazy)하지만, 이게 오히려 흑백사진의 묘미를 살린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나의 콘타플렉스 TLR은 지금 대기 상태다. 이제 필름을 넣고 찍으면 된다. 나에게 빨리 생명을 불어넣어 달라고 보채는 것 같다. 어떤 사진이 나올까 마음이 설렌다. (뒤 사진 2장은 일본작가가 이 카메라로 찍은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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