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제 정말 완연한 여름이다.
자전거를 타고 한강공원을 지나치다보면 호박꽃을 비롯해
가지, 오이, 수세미 등 채소꽃들이 한창이다.
벌써 꽃이 지고 가지나 호박, 옥수수는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여름꽃의 대명사 패랭이꽃과 해바라기꽃도 한창이다.
길가에는 개구리까지 보이니 여름인게 확실하다.

흔히 못난 얼굴을 가리킬 때 호박같다거나 호박꽃이라고 한다.
우리말 사전에 '예쁘지 않은 여자를 비유'하거나
'못생긴 여자를 놀리는 말'이라는 해설이 버젓이 있다.

호박은 못생긴 채소이고 호박꽃은 못난 꽃일까?
잘낫다는 기준은 무엇일까?
미에 대한 절대적 기준이야 물론 없을테고,
누군가 놀리느라 쓴 말이 널리 퍼지게 된 것 같다.

못생겼다는 호박은 쓰임새가 아주 넓다.
청둥호박을 얇게 썰어 떡가루와 함께 시루에 찐
호박떡은 은근한 단맛이 일품이다.
노란 호박물이 배어나고 향까지 풍기는 깊은 맛이 좋다.

애호박을 얇게 썰어 말렸다가 물에 불려 볶아
양념에 무쳐 나물로 먹는 찬거리는 호박고지이고,
애호박과 호박순을 쓸어 갖은 양념으로 버무려 담근 김치가 호박김치다.

호박범벅은 청둥호박과 찹쌀가루를 버무려 찐 것이다.
연한 호박잎을 밥솥에 쪄서 된장과 고추장을 얹어
쌈으로 먹으면 여름철 입맛을 돋우는데 알맞다.

호박전은 애호박을 동그랗고 얇게 저미어
밀가루와 달걀을 입혀 부쳐 낸 것이고,
호박국은 얇게 저민 애호박과 파를 넣고
된장이나 고추장을 넣어 끓인 것이다.

늙은 호박에서 빼낸 호박씨를 햇볕에 말려 까먹었고,
늙은호박을 고아서 만든 호박엿은
부드러워 노인들이 먹기에 좋았다.

호박죽은 잘 익은 호박을 삶아 짓이기고
팥과 쌀가루를 넣어 풀어서 쑤거나
토장국에 쌀과 쇠고기를 넣고 끓이다가
애호박을 넣고 쑨 죽을 말한다.

아이를 낳고 난 후 부기를 빼는데
늙은 호박을 푹 달여 먹으면 좋다고 했다.

어린 시절, 여름이면 담장마다 호박꽃이 피었다.
돌담, 흙담, 시멘트블럭담 위를 기어 올라간
호박줄기에 매달린 진노란 호박꽃!
여름비 한 번에 담장 아래가 온통 노랗도록 떨어지던 호박꽃!

호박꽃은 달작지근하면서 어지러운 냄새가 진했다.
아주 부드러워 꽃잎을 만지면 녹듯이 부스러졌다.
호박꽃에는 벌이 많았다.
가슴과 배 부분이 노란 호박벌인데,
벌이 꿀을 따먹을 때 호박꽃을 오무리고
두어바퀴 힘차게 돌린 다음 땅바닥에 패대기 쳤다.
충격으로 어리벙벙한 벌을 잡아 꽁지의 침을 빼내
손바닥 위나 위옷섶에 놓거나 친구를 놀리는 데 사용했다.

호박꽃 자체는 우리에게 친숙하고 수더분한 꽃인데,
일상 쓰임에서 못난 것을 뜻하게 되니 억울한 일이다.
'호박이 넝쿨째 떨어진다'와 '호박을 놓치다'와 같은
호박에 관한 속담들을 보면,
호박이 그리 만만하고 가벼운 물건이 아니라
이익과 재물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잘난 사람이 보기 좋고, 그래서 돈을 들여
일부러 얼굴과 몸을 뜯어고치는 세상이라지만,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만 사는 세상이 아니니
조금 떨어지고 서툰 삶들도 돌보는 인심이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에 보이는 꽃사진은 요즘 한창인 꼬리조팝과 핫립쎄이지다.
꽃중에서도 참 요염하게 생긴 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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